기본 게시판 내용보기
3월 네째주(24일-법사 신규탁 교수)
작성자 : 보광사 / 등록일 : 2019-04-17 / 조회수 : 610

[1] 서론

 

 

오늘의 강경법회 교재 <원각경・현담>(24-25쪽)입니다.

<원각경>에서는 모두 12명의 보살이 질문하고, 그에 따른 대답을 세존께서 하시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때문에 <원각경>의 내용을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질문과 대답을 짝지어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2] 본론

 

 

그 중, 첫 질문자는 문수보살입니다.

 

1. 부처된 이유를 묻는 문수보살

이에 문수사리 보살이 대중 속에서 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올린 뒤에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① 이 법회에 모여든 여러 대중들을 위하여 여래께서 최초에 마음을 내어 실천하신 청정한 수행법을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② 그리고 보살들이 대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을 내어 모든 병을 멀리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③ 또 말세 중생 가운데 대승을 구하는 이들이 잘못된 이론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고 오체를 땅에 대어 절했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거듭하였다.

 

 

於是에 文殊師利菩薩이 在大衆中하사 卽從座起하사 頂禮佛足하시고 右繞三匝하시고 長跪叉手하사 而白佛言하시되 大悲世尊하 願爲此會에 諸來法衆하사 說於如來의 本起하신 淸淨한 因地에 法行하시며 及說菩薩이 於大乘中에 發淸淨心하여 遠離諸病하사 能使未來末世衆生으로 求大乘者가 不墮邪見케하소서 作是語已하시고 五體를 投地하사 如是三請하사 終而復始하시다

 

 

⇨ 이상에서 문수보살의 질문은 모두 셋이다. 그것을 ①, ②, ③으로 표시했다. ①에 대한 답변은 바로 다음의 문장에서 찾을 수 있다.

 

 

참고로 ②에 대한 답변은 교재 143쪽 [정업장]에 나오고, ③에 대한 답변은 교재 166쪽 [보각장]에 나온다. 오늘 법회에서는 ①의 답변을 보기로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2. 부처님의 대답

 

“선남자여, 위없는 진리의 임금께서는 원각이라고 하는 커다란 다라니(dhāranī) 관문을 가지고 있다. 그 임금께서는 이 원각의 다라니 관문을 통하여 온갖 청정한 진여와 깨달음과 열반과 바라밀을 흘려보내어 보살을 지도한다.

 

일체 여래들께서 하신 근본적인 수행은 모두가 다 이 청정한 원각의 기능을 총체적으로 관조하는 방법에 의지한다. 이런 수행을 해서 무명을 영원히 끊어야 마침내 불도를 완성한다.

 

 

善男子야 無上法王이 有大陀羅尼門하니 名爲圓覺이니 流出一切淸淨한 眞如와 菩提와 涅槃과 及波羅蜜하여 敎授菩薩하나니 一切如來本起因地가 皆依圓照淸淨覺相하여 永斷無明하여야 方成佛道하니라

 

 

 

○ 다라니(dhāranī): 총지(摠持)로 한역. 원각의 본바탕 속에는 무수히 많은 덕의 작용이 있는데 항상 이것을 간직하여 유실하지 않는다.

 

 

진여: 원각의 본바탕은 본래 거짓되거나 허망하거나 변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진실하기 때문에 ‘진(眞)’이요 항상 변함이 없기 때문에 ‘여(如)’이다.

 

 

○ 바라밀: pāramitā의 음역, 到彼岸(도피안)으로 한역. 열반에 도달한다는 뜻. 여기서는 열반에 도달하기 위하여 닦아야 하는 방법을 지칭.

 

 

○ 청정한 원각의 기능을 총체적으로 관조하는 방법: ‘청정한 원각의 기능’과 그것을 ‘관조하는 행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화엄종에서는 지(智)와 조(照)를 둘로 보지 않는다. 관조하는 주체와 관조되는 대상이 하나이다.

 

 

 

[3] 결론

 

 

⇨ 대답의 핵심은 다음의 마지막 문단이다. 즉, “일체 여래들께서 하신 근본적인 수행은 모두가 다 이 청정한 원각의 기능을 총체적으로 관조하는 방법에 의지한다. 이런 수행을 해서 무명을 영원히 끊어야 마침내 불도를 완성한다.”

 

⇨ ‘원각의 기능’은 모든 중생에게 다 있습니다. 법사인 저는 이것은 우리들의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양심을 관찰하여 그 양심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하지요. 여러분들은 이 귀절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다음글 4월 첫째주(7일-법사 혜성 주지스님)
이전글 3월 셋째주(17일-법사 신규탁 교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