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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둘째주(월운 큰스님)
작성자 : 보광사 / 등록일 : 2019-03-24 / 조회수 : 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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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뵈온 월운당의 향기
 
불교평론 [77호] 2019년 03월 01일 (금)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월운스님

가족 공동체, 학교 공동체, 불교 공동체. 나는 주로 이 세 공동체에서 살고, 만나는 사람들도 거의 여기에 국한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인연들이 많았다. 나는 지난해 불교 공동체에서 만난 한 분의 문집을 정리해서, 《월운당 가리사-화엄종주 월운당 해룡강백 문집》(신규탁 엮음, 취봉정원 교열, 조계종출판사, 2018)을 세상에 내놓았다. 월운 스님을 뵌 것은 1978년 봄이었는데, 세월 속에서 나는 그분을 나의 ‘마음’ 속에 스승으로 모시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내가 그분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된 게 아니라, 내가 그분을 ‘마음’에 담아서, 나 스스로 그분을 스승으로 생각하여 여태 살고 있다.

  

나에게는 스님께로 향하는 ‘향심(向心)’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향심’의 원천은 사실 스님에게 있다. 나를 끄는 힘이 그분에게 있었다. 스님의 문집을 만들면서 내내 생각한 화두가 하나 있었다. 

 

나는 왜 그분께 끌리는 것일까? 사실, B4 크기의 총 848쪽의 문집을 만든다는 것은 시간과 힘이 여간 드는 일이다. 그분의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 힘든 일을 하게 했을까? 그분은 대체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나는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짧은 글로 다 말하기 어렵고, 핵심은 이렇다.

 

묵이지지(黙而識之) 하시며
학이불염(學而不厭) 하시며
회인불권(誨人不倦) 하시도다.

잠자코 계시되 적어두시고,
배우시되 싫증 내지 않으시며,
남을 가르치시되 게을리하지 않으시네.

 

이 글은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내용으로, 공자님 자신이 당신의 삶을 드러낸 말이라고 전해져 왔다. 이 인용문 뒤에 이어지는 “하유어아재(何有於我哉)”를 보면, 공자님께서 자신을 뽐낸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논어》라는 책 자체가 불완전한 텍스트이기 때문에 뒷날 편집자가 전후의 맥락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공자님은 원래 자신을 뽐내는 분이 아니시다. 

 

아무튼 위의 인용문에는 모두 6개의 동사가 등장하는데, 그 동사들의 목적어는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설이 있지만 나는 남북조시대 양나라 경학자 황간(皇侃, 488~ 545년)의 설에 따라 ‘자도(自道)’로 읽는다. 그러면 우리 스님의 ‘도(道)’는 무엇일까? 좁게 보면 불도(佛道)일 것이고, 넓게 보면 진리(眞理)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스님이 ‘도’를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이번에 문집을 정리하면서 보니, 말씀으로는 안 하셨지만 ‘도’를 아시고 마음으로 이해한 대로 글로 적어두셨다. 《월운당 가리사》는 스님의 그런 살림살이 모음집이다. 최초의 저술은 《무봉탑》(1966년)이고, 최초의 번역서는 《구사론대강》(1960년), 최초의 정서 현토는 《능엄환해산보기》(1957년)이다. 최초의 한글대장경 번역은 《경집부 12》(1966년)이고, 단편 글로는 순 한문으로 된 〈《술몽쇄원》 후기〉(1960년) 등이다. 스님은 스스로 체험한 도를 묵묵하게 이해하고, 글로 적어 남겨두셨다. 그래서 스님은 실로 “묵이지지(黙而識之)” 하신 분이라 나는 생각한다.  

 

스님은 경기도 장단군 진동면 용산리에서 출생하여 5세 때 서당에 들어가고 초등학교 몇 년 다니고 다시 서당에서 글을 읽는다. 19세 되던 1947년 9월 27일 집을 나와 개성 쪽에서 내려오는 트럭에 몸을 실으니, 동파리를 거쳐 임진강을 건너고, 다시 문산을 지나 봉일천을 돌아, 북한산을 넘어 청와대 옆을 지나, 광화문 네거리에 내려준다. 여기부터는 걸어 용산역에서 ‘월남동포 수송차량’을 타고 밀양 삼랑진역에 내린다. 이런저런 곡절을 거쳐 다시 여객선을 타고 남해 화방사 객실로 들어가니 때는 같은 해 11월 29일이다. 

 

어린 시절 유교의 경서를 읽고 외워서 한문을 읽고 쓰는 데는 지장이 없었던 스님은 화방사에 있는 불교 서적을 죄다 읽는다. 1949년에 오월 단옷날 그 절에서 사미승이 된다. 1950년 11월에는 “젊은이가 독살이에 맛 들이면 못쓴다.”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여러 대중처소에서 생활하여 2019년 오늘까지 대중들과 사신다. 그 사이에 무수한 책과 지식을 배우되 싫증 내신 적이 없다. 그래서 스님은 실로 “학이불염(學而不厭)” 하신 분이라 나는 생각한다.

 

31세였던 1959년 10월 1일은 스님에게 특별한 날이다. 통도사에서 조실로 계셨던 운허 스님께서는 이렇게 게문을 내려주고는 6 · 25 전란으로 전소된 봉선사로 떠나신다. 

 

王舍一輪月   왕사성 달빛이
淸光古到今   오늘까지 전해와서
映輝今付你   그대에게 비추니
好護昭雲林   잘 간직하여 전하라.

 

이로부터 스님의 제자 교육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교편생활 60년 세월이다. 그러는 동안 글도 많이 쓰시고, 동국역경원 일도 하시고, 절 주지 행정도 하시면서, 그러는 사이 짬을 내어 많은 사람을 교육하시되 게을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경을 사이에 두고 스님 밑에 앉은 세월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강의를 물리치던 모습은 뵐 수 없었다. 몸 정성 마음 정성을 다하신다. 그러니 스님은 실로 “회인불권(誨人不倦)” 하신 분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제 나도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은 지 20년 하고도 6년째를 보내고 있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가? 베풀어주신 은혜는 하염없는데, 나는 뒷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작년 한 해 나는 이렇게 문책하며,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하며, 그런 날을 보냈었다.

 

 ananda@yonsei.ac.kr

 

==========================월운당 가리사===

 

 

 

-月雲堂 海龍 講伯 略歷
-사진으로 보는 월운 강백의 삶
-法 語 : 眞際 法遠_대한불교조계종 종정
-獻 詞 : 如山 慧炬_오대산후인
-축하휘호 : 閑庵 正修_봉선사 보림선원장
-축하휘호 : 雪峰 眞性_포천 화암사 회주
-축하휘호 : 訥庵 東眼_봉선사 한주
-축하휘호 : 沁隱 全正雨_심은서원 대표
-헌 정 사 : 雪山 鐵眼_향림회 대표
-축 사 : 木園 日關_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장
-축 사 : 密耘 部林_봉선사 회주
-간 행 사 : 신규탁_연세대 철학과 교수
-일러두기

제1부 譯經解義 : 불경을 번역하고 뜻을 밝힌 글 모음
1. 著述 · 編纂
무봉탑(1966)
봉선사 본말사 약지(1977)
삼화행도집(1980)
삼화표월지(1983)
삼화일용집(1986)
운허 선사 어문집(1989)
운당여화(1989)
달처럼 구름처럼(1990)
일용의식수문기(1991)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공저, 1992)
대장경의 세계(1999)
큰스님의 감로법문(공저, 2011)

2. 譯註 ·講話
구사론대강(1960)
유식강요(1961)
불조삼경(1969)
원각경 주해(1974)
금강반야바라밀경강화(1977)
화엄경 초역(1978)
대승기신론강화(1993)
능엄경강화(전3책, 1993)
종용록(전3책, 1993)
범망경(1994)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2000)
부모은중경강화(2000)
수구성취다라니경(2003)
우리말 석가여래행적송(2004)
금강경강화(개정판, 2004)
부모은중경(2005)
선문염송 ·염송설화(별행본, 전10책, 2005)
장아함경(별행본, 전2책, 2006)
잡아함경(별행본, 전5책, 2006)
중아함경(별행본, 전4책, 2006)
증일아함경(별행본, 전4책, 2007)
전등록(별행본, 전3책, 2008)
조당집(별행본, 전2책, 2008)
인본욕생경주해(2011)
무상계강화(2011)
수릉엄경(2012)

3. 淨書 · 懸吐
능엄환해산보기(1957)
금강경사기(1958)
기신론사기(1958)
원각경사기(1960)
능엄사족(1960)
제교행상(1960)
치문하마기(1984)
석가여래행적송(1995)
화엄청량소초 십지품 삼가본사기(2002)
화엄청량소초 현담기(2004)
현토 교감 능엄환해산보기(2005)
화엄청량소초 삼현(2006)
화엄청량소초 십지 후삼분(2008)
금강경사기(2008) 201
기신론사기(2008) 204
서장사기(2008) 207
선요사기(2008) 209
사집사기(2008) 211
능엄경사기(2013) 213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사기(2013)

4. 科圖 · 承襲圖
화엄경소초과도집(1998)
수릉엄경요해소과도(2004)
대승기신론필삭기과도(2005)
금강경소기회편과문(2007)
원각경과도(2007)
신편불조원류(2007)
수능엄경 한글 과도집(2012)
5. 한글대장경(동국역경원간행)
심밀해탈경 ·해심밀경 ·해절경 ·상속해탈지바라밀요의경 ·상속해탈여래소작수순처요의경 ·불지경 ·대승밀엄경 ·제덕복전경 ·부모은난보경 ·우란분경 ·보은봉분경·효자경 ·미증유경 ·심희유경·희유교량공덕경 ·최무비경 ·작불형상경 ·조립형상복보경 ·대승조상공덕경 ·관세불형상경 ·마하찰두경 ·욕상공덕경 ·욕불공덕경 ·조탑공덕경 ·우요불탑공덕경 ·온실세욕중승경 ·시등공덕경 ·등지인연경 ·누각정법감로고경 ·보시경 ·오대시경 ·출가공덕경 ·요본생사경 ·도간경 ·자씨보살소설대승연생도간유경 ·대승사리담마경 ·패다라수하사유십이인연경 ·연기성도경 ·구성유경 ·연생초승분법본경 ·분별연기초승법문경 ·분별연생경 ·무명나찰집 ·묘법성념처경 ·분별업보약경(1966)
불퇴전법륜경 ·살담분타리경 ·법화삼매경?대법고경 ·보살행방편경계신통변화경 ·대살차니건자소설경 ·금강삼매경 ·대승방광총지경 ·무량의경 ·관보현보살행법경(1967)
제법집요경 ·분별선악소기경 ·처처경 ·십팔니리경 ·매의경 ·견의경 ·귀문목련경 ·사원경 ·사자침경 ·소욕치환경 ·분별경 ·만법경 ·알다화다기경 ·오고장구경 ·자애경 ·충심경 ·재공재환경 ·잡장경 ·아귀보응경 ·죄복보응경 ·호정경 ·인연승호경·사미라경 ·오무반복경 ·십이품생사경 ·미증유인연경 ·정의우바새소문경 ·팔무가유가경 ·신모희수경 ·제행유위경 ·교량수명경 ·본사경(1967)
사분율(1968 ·1969 ·1972)
대반야바라밀다경(1968∼1970)
경덕 전등록(1970 ·1971, 1986)
중론 ·십이문론 ·백론 ·광백론본 ·대승광백론석론 ·백자론 ·일수로가론 ·대승파유론·육십송여리론 ·대승이십송론 ·대장부론(1972)
업성취론 ·대승기신론(진제 역) ·대승기신론(실차난타 역)(1976)
선문염송(1977)
조당집(1981)
보살지지경(1995)

제2부 助道弘文 : 수행을 돕고 불법을 펴는 글 모음
1. 儀文
2. 論文
3. 序文
4. 記文
5. 金石文
6. 上樑文
7. 追悼文
8. 書簡文
9. 文學

제3부 淸論世說 : 세상을 일깨우는 맑은 글 모음
행 · 불행은 새끼처럼 꼬여가고(1976)
지혜와 자비와 행복의 삼각함수(1976)
영원히 변치 않는 자유로움(1976)
선문여화(1977)
부처님 당시의 성 문제(1981)
능엄경을 이야기한다(1985)
능엄경(1985)
최윤선 님에게(1986)
가치의 기준(1986)
예수재에 따른 이야깃거리(1987)
만천하 교도들의 눈귀 뚫어라(1988)
불교 의식의 어제와 오늘(1989)
포교의 출발점은 복지(1989)
근세 역경사를 회고하며(1990)
머리 깎고 먹물 옷 처음 입는 날을 영원히 기억해야(1991)
뗏목처럼 생각하라(1991)
죽음에 대비하는 세 가지 길(1991)
불교와 제사(1991)
득이수난(1992)
숙세의 업으로 만난 원각경(1992)
부처님이 다시 오신다면(1992)
나의 스승, 운허(1994)
우리말 대장경 완간을 위하여(1994)
업과 윤회, 그리고 심성의 깨달음(1995)
능엄습유(1996)
혼탁한 이 시대 불자의 역할(1996)
절 집안 안팎일을 골고루 익혔던 화방사 시절(1997)
마음의 진실(1998)
영산재 재연 참관 소감(2003)
버려야할 인습, 지켜야 할 관습(2006)

제4부 應物垂示 : 인연 따라 휘호로 보이신 글 모음
1. 偈文 · 囑文 · 賀書
2. 懸板 · 柱聯 · 扁額

- 발 문 : 취봉 정원_봉선사 능엄승가대학원 학장

 

출판사 서평

* 문집 간행의 의의

월운 해룡(月雲海龍) 강백은 우리나라 근대와 현대의 역사 변천을 몸소 겪으며 주체적으로 독서하고 사유하고 글 쓰고 행동하는 시대의 지성이다. 1929년 12월 12일, 38선 부근 경기도 장단군 진동면에서 태어나 일찍이 향리에서 유가의 경서와 곁으로 제자서 및 당음(唐音)을 학습하던 중 뜻한 바가 있어 출가하였고, 1949년 단오절 경남 남해 화방사에서 사문의 길에 들어섰다. 또한 운허 용하(耘虛龍夏, 1892∼1980) 대종사를 부산 범어사에서 뵈옵고, 경학으로 불조께 은혜 갚으려 지금껏 노력하고 있다.

월운 스님은 1959년 10월 1일 통도사 강탑(講榻)에 착좌한 이래 중앙승가대학교와 봉선사 능엄학림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 학인들을 제접했고, 운허 대종사에 이어 동국역경원장 책임을 맡아 《한글대장경》을 완간해냈다. 곁들여 교구장 직책도 아울러 수행하며 각종 포교 현장을 주관하였다. 그동안 수많은 문장과 말씀 남겼으니, 이 모두를 달구지에 모아 실으면 그 무게에 황소도 땀을 흘릴 것이라고 신규탁 교수는 말한다.

우리 역사의 질곡과 부침 속에서, 또 여울진 불교 현장 속에서 강백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관철하려 노력한 보기 드문 실천가이다. 이런 강백이 남긴 문장 속에는 한 출가인의 체험은 물론 당대의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다. 신규탁 교수가 문집을 간행하는 뜻은 바로 여기에 있다. 향후 우리나라 근·현대 불교를 연구하려는 이들은 월운 강백이 남긴 문장들을 통해, 시대 지성의 고민과 그 해결의 전말 그리고 남겨진 과제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분명 현재와 미래의 좌표 설정에도 도움이 있을 것이다.

현재 출판된 월운 강백의 책자(冊子)들이 국립도서관을 비롯하여 각 대학도서관에 나뉘어 보관되어 세상과 함께할 것이지만 아무래도 그 전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또 타인의 저서 앞이나 뒤 또는 중간에 남긴 강백의 글들은 검색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부처님 도량에 남긴 기문·금석문·편액 등을 비롯하여 제자들에게 내린 게문(偈文)과 촉문(囑文) 등 휘호는 당사자만이 간직할 뿐이고, 역경(譯經)과 의해(義解)의 여가에 남긴 당음(唐音) 등은 더욱더 알기가 어렵다. 이에 신규탁 교수는 강백의 출가(出家) 칠순(七旬)과 동시에 현신(現身) 구순(九旬)을 기념하여 강백의 학문과 사유의 세계로 인입하는 나루터를 마련하는 심정으로 세상에 유통되는 강백의 문장들을 취합하기에 이른다.

출가 사문인 강백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수행 여정의 한갓 도중사(途中事)이겠지만, 뒷사람에게는 한 말씀 한 문장이 귀한 것이니, 분명 가리사(家裡事)이리라. 월운(月雲)은 강백의 당호(堂號)이고, 해룡(海龍)은 운허(耘虛) 대종사와 사자(師資)의 인연으로 받은 법명(法名)이다. 평생 강탑(講榻)에 기대어 제방의 강사(講師)들을 제접하는 스승의 스승이니 강(講)의 백(伯)이고, 성종(性宗) 내의 화엄교학으로 법해(法海)의 보벌(寶筏)을 삼으시니 화엄(華嚴)의 종주(宗主)이다. 그리하여 신 교수는 책 이름을 ‘화엄종주 월운당 해룡 강백 문집’이라 하고 ‘월운당 가리사’라고 병칭한다.
책을 엮은 신규탁 교수는 1978년 이래 지금껏 봉선사를 출입하며 월운 강백의 사유와 철학 세계를 흠모하여 오늘을 살고 있다. 대학교에 봉직하고 또 불교학을 전공하는 홍복을 만나 문서를 접할 여건도 좋았음을 스스로 다행으로 여기며 자신의 수고로 강백의 일대사인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재주 없고 아둔함을 탓으로 받아 듣고 강백의 철학 세계로 여행하려는 분들에게 좋은 가이드북이 되기를 희망하며 월운 강백의 대문집을 묶어 냈다.

* 편집 방침

1. 기왕에 발간된 문장을 원형 그대로 입력하되 인쇄의 오탈자는 수정했다.
2. 서지 사항과 전고를 밝혀 뜻 있는 분들이 실물을 확인하는 데 편리하도록 했다.
3. 편제는 다음의 기준으로 했다.

제1부 [譯經解義 ; 불경을 번역하고 뜻을 밝힌 글 모음]
강백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해서 이미 국립도서관을 비롯하여 대학이나 산문의 도서관에 비치되 있는 冊子들을 대상으로, 그 서지사항을 명기하고 내용을 약간이나마 알 수 있도록 강백 자신의 머리글 정도만을 옮겨 실었다. 각종 책자는 형태별로 저술-편집, 역주-강화, 정서-현토, 과도-승습도 등으로 분류했고, 《한글대장경》은 별도의 분류로 묶었다.

제2부 [助道弘文 ; 수행을 돕고 불법을 펴는 글 모음]
타인이 발행한 단행본 책자에 실린 서문이나 추천사 내지는 논문 등을 비롯하여, 절집안의 儀禮나 歷史나 自然이나 人物들의 저간 사정을 강백 특유의 문장 솜씨로 풀어 낸 文과 辭와 律을 옮겨 실고 그 전거를 명기했다.

제3부 [淸論世說 ; 세상을 일깨우는 맑은 글 모음]
각종 잡지에 소개된 짧은 글들을 옮겨 왔다.

제4부 [應物垂示 ; 인연 따라 제자들에게 보이신 글 모음]
강백의 衷心과 필체가 담긴 偈文과 囑文과 祝賀 등 각종 휘호들을 사진 찍고 그 내용을 활자화하고, 이에 겸하여 현판·주련 등 각종 편액도 그렇게 하였다.

* 이상의 총 4부로 강백의 각종 문장들을 분류하고, 각기 그 분류항 내에서는 발표된 년도 순으로 배열했다. 단 제4부의 偈文과 囑文은 각 단위별 문도 사이에 공론화된 순서를 따랐다.

* 기타 출판에 관한 규칙들은 조계종출판사의 관례에 따랐다.

4.*
월운 스님은 1960년대 초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기를 쓰신다. 기록이 몸에 배신 분이다. 60(1989년)세 때에는 잡지에 게재했던 글들을 모아 손수 『달처럼 구름처럼』을 냈고, 70(1999년)에 신규탁 교수가 간사가 되어 역경(譯經)과 경학(經學)에 관한 글들을 스님과 인연 있는 교수들에게 받아서 논문집을 냈다. 당시에 비용은 스님 제자 모임인 향림회에서 주선했다. 80이 되던 2009년에는 기념할 만한 책을 내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신 교수도 기억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월운 스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었기에 신 교수는 2012년부터 스님의 저서 목록을 간간이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렀다. 2017년 회암사 발굴이 끝나 불교 텔레비전에서 기념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었는데, 마침 신 교수가 해설을 맡게 되었다. 3∼4일간의 촬영을 마치고 주지 절에 갔다가 그 절 주지(혜성스님 ; 월운 스님 손자 상좌, 지금은 파주 보광사 주지)를 만났다. 하늘이 도운 것인지 그 일이 인연이 되었고, 책을 준비하고 있던 신 교수는 흔쾌히 도움을 주시겠다는 주지의 약조를 받았다.

신 교수가 다시 절을 찾은 것은 2018년 봄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원고의 윤곽이 잡힌 터였다. 4∼6월 사이에는 월운 스님을 뵙고 뜻을 밝히고 목록을 함께 만들고 빠진 것과 의심 가는 부분들을 점검했다. 이때부터는 이 문집을 교열하신 정원 강사 스님도 도와주셨다. 이렇게 월운스님-정원스님-신규탁 교수가 자주 만나던 중 7월 중순 경에 문집을 준비하는 사실이 왕산 스님에게 알려졌다. 그 뒤 향림회에 급속히 이 소식이 전해졌고, 출판 비용과 구순 생신 준비를 향림회가 전적으로 도맡겠다며 힘을 보태주셨다. 일이 너무나 커져버린 것이다. 고맙게도 조계종출판사를 지정하여 책을 필요한 적재적소에 보급하기로 계획하기도 했다.

* 문집 발간 후의 소감과 향후의 계획

한국 현대 불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후세에 지금을 평가하는 데에도, 또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울 때에도, 현장 경험자들의 기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기록의 풍토를 만든 데에 본 문집이 하나의 사례가 되기를 신 교수는 바란다. 살아생전에 ‘팩트’를 체크해서 기록 보관하고 공람하는 풍토가 되기를 바란다.

신 교수는 내년에 이번의 문집을 발판으로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스님의 관심은 역경, 교리 해석, 의례, 포교, 역사, 교육으로 크게 나뉜다. 1950년대 후반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님의 글쓰기 주제는 앞에서 열거한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스님의 제자들은 대개 세 부류이다. 의법상좌, 전강제자, 불경서당. 운허 스님 기일(음력 10월 10일)을 기해 세 부류의 제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친분도 다지고, 월초-운허-월운 스님으로 이어지는 봉선사 특유의 전통을 선양하고 계승하는 일을 스스로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돕는 모임을 결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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