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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둘째주(14일-법사 신규탁 교수)
작성자 : 보광사 / 등록일 : 2019-04-17 / 조회수 : 616

오늘은 <원각경>의 첫 시작이 어떻게 되는지를 읽어보겠습니다.

1. 법문을 기록한 사람, 법회가 열린 때, 법사

 

 

어느 날 바가바(bhagavat)께서 다음과 같이 하시는 것을 제가 보고 들었습니다.

 

如是我聞하사오니 一時 婆伽婆께서

 

2. 법회가 열린 장소

 

 (그 분께서는) 신묘하고도 막힘이 없고 광명이 가득한 곳으로 들어가셔서 오로지 삼매에만 몰두하시어 수많은 여래들과 함께 찬란한 빛으로 서로서로를 비추시며 계셨다. 이곳은 모든 중생들이 본래부터 간직한 ‘깨끗한 깨침의 자리[淸淨覺地]’로서, 몸이니 마음이니 하는 일체의 겉모양이 완전히 사라져 평등하고 끝이 없어 온 세계에 꽉 차 있다. 그곳에서 둘이 아님[不二]을 수순하시며, 둘이 아닌 상태에서 여러 종류의 정토를 드러내셨다.

  

入於神通大光明藏하사 三昧正受하사 一切如來 光嚴住持하시니 是諸衆生 淸淨覺地 身心 寂滅하사 平等本際하사 圓滿十方하사 不二 隨順하사 於不二境 現諸淨土하사

 

 3. 법회에 모인 대중들

  

그 정토에 큰 보살마하살 10만 명과 함께 자리를 하셨다. 그중 대표적인 보살들의 이름을 들면, 문수사리보살, 보현보살, 보안보살, 금강장보살, 미륵보살, 청정혜보살, 위덕자재보살, 변음보살, 정제업장보살, 보각보살, 원각보살, 현선수보살 등이다. 이런 등등의 보살과 그 보살을 따르는 권속들도 함께하였다. 이들은 모두가 삼매에 들어가 여래의 평등한 법회에 함께 자리하였다.

  

與大菩薩摩訶薩十萬人이더시니 其名曰호대 文殊師利菩薩 普賢菩薩 普眼菩薩 金剛藏菩薩 彌勒菩薩 淸淨慧菩薩 威德自在菩薩 辯音菩薩 淨諸業障菩薩 普覺菩薩 圓覺菩薩 賢善首菩薩等 而爲上首하사 與諸眷屬 皆入三昧하사 同住如來 平等法會하시니 

 

 

 

∎바가바(bhagavat): 고대 한어(漢語)로는 소리로 번역하여 ‘바가바(婆伽婆)’, 뜻으로 번역하여 ‘世尊(세존)’이라 했고, 한글로는 ‘부처님’이라 한다. 부처님은 3종의 덕을 갖추셨는데, 첫째로 법신 부처님은 단덕(斷德)을 갖추셨으니 번뇌를 끊어야 출현하시기 때문이고, 둘째로 보신 부처님은 지덕(智德)을 갖추셨으니 알음알이를 지혜로 전환해야 출현하시기 때문이고, 셋째로 화신 부처님은 은덕(恩德)을 갖추셨으니 남을 위하는 보살행을 충족하고 교화할만한 인연이 성숙되면 중생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각경?에 나오시는 부처님은 단덕(斷德)을 갖춘 법신 부처님이시다. 그런데 예부터 화엄종에서는 법신 비로자나불과 보신 노사나불을 별도로 나누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理)와 지(智)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원각경?은 천 백억으로 변화의 몸을 나타내시는 화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은 아니다.

 

∎제가: 아난을 지칭. 대승경전을 아난이 결집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 나오는 정토를 설명하는 부분 참조.

 

∎신묘하고도 막힘이 없고 광명이 가득한 곳: ?보성론?에서는 ‘법계장(法界藏)’이라 했고, ?대승기신론?에서는 ‘심진여(心眞如)’라 했으니, 모든 중생과 부처님들에게 공통적으로 간직되어 있는 ‘본원(本源) 자리’이다. 유식종에서 법성토(法性土)라고 하고, 천태종에서는 상적광토(常寂光土)라 한다.

 

∎삼매: 범어 ‘samādhi’를 한어로는 ‘삼매(三昧)’로 표기했다. 마음이 조용하게 통일되어 안락하게 된 상태. 한어로는 정수(正受), 정(定), 등지(等持), 정사(正思)로 번역. 원효 스님은 ?금강삼매경론?에서 삼매를 정사(正思)로 해석하면서, 그 뜻을 “선정에 들어갔을 때에 의식에 떠오르는 표상을 섬세하게 모두 다 헤아리고 관찰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둘이 아님[不二]을 수순하시며: 원문은 “不二隨順”이다. 중국어의 어순으로 하면 “隨順不二”라고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둘’이란 여러 상대적인 개념이나 현상들을 지칭한다. 예를 들면, 생사에 윤회하는 길과 열반을 이르는 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둘’이다. 범부들은 생사윤회에 순응하며 살고, 성문승과 연각승들은 열반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생사와 열반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 밖에도 정토와 예토를 나누고, 중생과 부처를 나누고, ‘능(能) 소(所)’를 나누는 것 등도 ‘둘’이다.

 

∎여러 종류의 정토를 드러내셨다: 불교의 국토는 법신 부처님이 머무는 법성토, 보신 부처님이 머무는 수용토, 화신 부처님이 머무는 변화토, 이렇게 3종이 있다. 이 모든 국토는 ‘일심(一心)’ 위에 세워진다. ?원각경?은 법신 부처님이 법성정토에서 설법하신 것으로 화엄종에 의하면 52지위 중에서 초지(初地) 이상의 보살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초지에 오르지 못한 수행자들이 보면 화신불이 예토에서 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문제일의 아난존자는 화신불이 예토에서 설하는 내용을 결집한 것으로서, 예부터 법성종의 철학에서는 이렇게 이해했다.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화엄종과 선종과 정토종이 이런 철학에 입각해왔다.

 

∎보살마하살: ‘보살’과 동일한 뜻이지만, ‘보살’ 중에서는 10지(地)의 지위에 아직 오르지 못한 ‘보살’도 있으므로 10지 이상의 ‘보살’과 구별하기 위하여 ‘마하살’로 표기했는데 이는 ‘mahā-sattvā’를 음역한 것으로 ‘대보살(大菩薩)’로 한역한다. ‘보살’은 ‘보리살타’의 줄인 말로 범어는 ‘bodhisattvā’이다. 한어로는 ‘각유정(覺有情)’으로 번역하기도 했다.대승불교 경전에서는 재가와 출가를 통틀어 발심 수도하는 남녀 모두를 ‘보살’ 또는 ‘불자’라 호칭한다. 그러나 수지(受持)하는 계(戒)의 품수(品數)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공동체의 생활양식과 율법에 구별이 있다.

 

[해설]

 

법사인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생들이 본래부터 간직한 ‘깨끗한 깨침의 자리[淸淨覺地]’” 즉, 중생들의 깨끗한 마음 위에서 불국토가 열리고, 그 국토에서 수많은 부처님들이 설법을 한다는 이야기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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